139q / planar 50.7 / kodak colorplus 200 / 5ed
{ 어느 잉여인간에 대하여 }
이 인간은 세상에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인 뭐 그런 녀석
버스 창가에 앉는 걸 좋아하지만 프레임이 유리를 가로 질러 시선을 방해하는 자리에 앉는 걸 매우 싫어하는 녀석
담배 연기를 별스럽지 않게 생각하지만 길을 걷다 무방비 상태에서 호흡기로 들이 닥치는 담배 연기를 저주하는 녀석
풀떼기가 아닌 것 중 익히지 않은 날것의 먹거리를 싫어하면서도 먹는 자리에선 살기 위해 꾸역꾸역 먹는 바보같은 녀석
걷는 걸 좋아하지만 버스를 타거나 지하철을 탈 때면 어떻게든 앉아가기위해 정면의 유리로 뒷자리까지 검색하는 얍삽한 녀석
책 읽는 걸 좋아하지만 책 사는데 지나치게 인색해서 도서관을 세상에서 가장 좋은 곳이라 착각하는 어리석은 녀석
좋은 사진을 찍는 것보다 좋은 카메라를 장만하고 싶은 생각만 머리속에 가득 채워둔 찌질한 녀석
석 잔 소주에 맛난 안주를 사준다면 지옥 불구덩이라도 따라갈 극한의 빈대정신을 가진 녀석
나잇살이나 먹고서도 세상에서 가장 예쁜 미소로 이연희의 미소를 꼽는 주책맞은 녀석
이 인간은 세상에 없어도 좋고
있어도 있는 듯 없는 듯 그저 그런 잉여인간~!
<201105, 서울, 강변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