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신림역 근처에 서식중이라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을 하는데요, 여느때와 같이 금요일 퇴근길 이었습니다.
신림역은 내선순환, 외선순환선 선로마다 따로 승강장이 있는게 아니라 가운데 승강장을 승객들이 공유하여
두 선로 모두 차가 들어오면 사람이 한군데 모이는 형태가 되어 콩나물 시루급 유동인구를 자랑(?)합니다.
이 날도 변함없이 빡빡한 사람들 사이에 끼어 계단을 올라 역을 나오고 있었습니다. 먹고 마시고 놀 곳 많은
신림역인지라 데이트를 위해 한껏 꾸미고 다니는 여성분들이 많아 가끔 눈이 즐겁기도 합니다. ㅎㄷㄷㄷㄷ
지하철에서 내려 계단을 한차례 올라가고, 개찰구를 나와서 다시한번 계단을 올라가려 할 무렵, 뜬금 없이 한
남자가 제 앞으로 무리하게 끼어들더군요. 그런가 보다 하고 저는 옆으로 비켜서 올라갔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앞사람과 두서너 계단 이상 벌리고 뒤따라 가는듯 한데 이 남자는 바로 앞쪽 여자분에게 필요
이상으로 바싹 붙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사람이 많으니 그런가보다 하며 시선을 돌리려는 찰나 그 남자의
휴대전화 카메라 부착면이 앞서 올라가는 여자분의 짧은 미니스커트 쪽을 향하여 가까이 붙어있는 겁니다.
'어라' 하며 계속 지켜보니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 이 놈이 의도적으로 촬영을 하며 시선은 다른곳으로 돌리고
있어서 제가 눈치 챈것을 모르더군요. 한 4-5초간 지켜보고 몰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5번 출구 계단 중간
정도를 올라가고 있다가 순간 마누라와 딸아이 생각이 번쩍 들며 이성의 끊을 놨습니다.
정신차려 보니 제가 그 놈 목을 벽쪽으로 밀어 제압하고 제 다른 손엔 그 자식 휴대전화가 손에 들려 있었습니다.
노바 : (남자를 잡아채며)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앞서 가던 여자분을 불러세웠습니다.
노바 : "아가씨, 이 사람이 뒷모습을 전화로 촬영하는것 같은데 확인해 보시겠어요?"
그놈 : "어.... 어... 그런게 아니라...;;"
여자분이 당황해서 몇초간 망설이다가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동의를 구한 것으로 이해하고 그놈에게
이야기 했습니다.
노바 : "지금 치맛속 촬영했죠? 만약 제가 오해를 한 것이라면 사람들 앞에서 정중히 사과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겠습니다."
그놈 : (말문 막힌 매우 당황한 표정)
라고 이야기 후 휴대전화 앞 커버를 열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동영상 촬영모드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놈은 휴대전화
기본 카메라 어플을 사용하고 있는 듯 했고 코너 한 자락에 촬영했던 사진이나 영상의 썸네일 바로가기가 보이길래
터치 해봤더니 치맛속 영상이 뙇!!!
노바 : "이런 ㅆㅂ...." (라고 중얼거리다 말을 삼킴)
목구녕으로 튀어올라오는 각종 쌍두문자를 차마 뱉진 못하고 그놈을 훓어보니 피부는 허예서 안경쓰고 머리는
살짝 웨이브에 멀쩡하게 생겨서 모범생 코스프레를 하려 한듯한 후드쟈켓을 입고 있었습니다.
휴대전화 화면을 옆으로 스크롤 해보니 모두 다른 여자 영상이 대여섯개 이상은 되어 보였습니다. 상습적으로
해온듯 보였고 순간 깊은 빡침이 머리 끝까지 차 올라 그놈 전화를 잡고 있는 제 손이 다 부들부들 떨리고 말도
잘 안나왔습니다.
그런데 더욱 황당한 것은 이놈 휴대폰의 잠금화면에 여자친구인지 와이프인지 여자 사진이 뙇 있는겁니다.
알고보니 이 ㅅㄲ가 이미 결혼한 유부남이었고 애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지 가족이 알면 ㅈ된다고 제발
용서해달라고 선처를 구하는데 더 한층 마음 깊은 곳에서 빡침이 치고 올라오더군요. 이 색귀 면상을 보면서
내가 직접 물리적 징벌(?)을 내릴 수 없는 현실에 제가 위염이 아닌 위암이 생길 기세였습니다. ㅎㄷㄷㄷㄷㄷ
노바 : "아가씨, 지금 이 사람이 본인 뒷모습을 몰래 촬영했는데 경찰에 신고할까요?"
아가씨 : (매우 당황하며) "네...? 네....."
제가 그놈을 제압하고 있는지라 전화걸기 애매한걸 느끼셨는지 어느 듬직한 남자분이 제 옆에 오셔서 같이
그놈을 제압하고 112 신고를 해주셨습니다. 제가 그 분에게 경찰 올때까지만 동행 해주십사 말씀 드렸더니
흔쾌히 허락 해주셨네요. 나중에 먼저 자리를 뜨셔서 미처 말씀을 못드렸지만 참 감사했습니다. 일이 어떻게
될지 몰라 여자분에게 제 휴대전화 연락처를 알려드리며 나중에 증인이 필요하면 연락하라 했습니다.
여전히 그 남자는 연신 굽신대며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는데 이 놈이 저한테 사과를 하네요?
나한테 미안할 거 없으니 여자분한테 사과해라 시키는데 왠지 진정성이 없어 보여서 그놈 어깨를 지그시 눌러
무릎 꿇혀 놨습니다. 그 아가씨는 일행과 약속이 있었는지 전화하여 누군가를 부르네요.
지나가던 사람들은 익숙치 않은 광경이 신기했는지 제 주위 약 1미터 반경 바깥 원형으로 구경꾼이 바글바글
거렸습니다. 그 피해자 아가씨와 성폭력범죄자(?), 동행해 준 남자분과 그리고 저. 계속 굽신거리며 사과하는
그놈을 제외하고는 어색한 시간이 계속 되고 있던 순간 여자분의 남자친구가 눈이 똥그래져서 양 주먹을 꽉 쥐고
달려왔습니다.
세상이 참 좁은게 제가 다니고 있는 복싱장 코치님이 그 피해자 여자분의 남친이었던 겁니다. 저보다 연배도
어리고 다혈질 성격을 알기에 그 자식에게 절대 손은 대지 말라 신신 당부하고 거리를 두고 이야기 하도록
했습니다.
저는 운동하면서 코치님의 매운 주먹을 이미 맛봐서(?) 알기에 맨주먹으로 한두대 치면 늑골, 코와 이빨 등이
제자리에 붙어있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이죠. ㅎㄷㄷㄷㄷㄷㄷ
코치님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던 찰나 경찰이 도착합니다. 각종 언론매체에는 부패하다 못해 더이상 나빠질
수 없는 경찰 수뇌부들의 소식들을 끊임없이 접하며 매일 욕만 하다가도 직접 현장에서 필요할때 출동해주니
이처럼 든든한 백업이 없네요.
여튼 여자분의 보호자로 남친인 듬직한 복싱 코치님도 오고, 경찰에게 자초지종을 자세히 진술하고 증인차
제 연락처를 남겼습니다. 경찰은 그 놈의 전화를 직접 현장에서 확인 후... 영화, 드라마에서나 듣던 미란다
3원칙을 범인에게 들려주며 현행범으로 수갑을 체워 체포하여 자리를 떠났고 저도 집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집에 들어가는 길에 방금전 있었던 일들을 냉정히 곱씹어 보니... 갑자기 등에 한줄기 식은땀이 흐르더군요.
순탄히 해결되기는 했지만 언제나 예외적인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것이니까요.
- 범인이 촬영한게 아니었거나, 순간 증거를 인멸했다면 나는 무고죄로...?
- 조직적으로 여러명이 촬영하고 있었는데 나 혼자 덤볐다면...?
- 칼 같은 흉기를 소지하고 있었다면 내 배에는 이미 바람구멍이 숭숭...?
- 각종 무술 유단자 였다면...?
그 날은 무모하게 용감 했었지만 또 다시 내 앞에 이런 일들이 벌어진다면 나는 '이성적'으로 범죄 현장에
나설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듭니다. 무고죄를 떠나서 집단폭력 또는 흉기를 이용한 저항에 당했다면...
저도 한 가정을 끌어가는 가장으로써 몸 사리며 지켜내야 할 것들이 있는데 말이죠.
그날 밤 늦게나마 여자분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또 발생할지 모를 추가 피해자를 막기 위해서라도 합의는
하지 않겠다고요. 이런 일에 선뜻 나선다는 것. 요즘은 보람차거나 자랑할 일이 아닌 참 무모한 행동이라고
생각드는 현실이 참 씁쓸하기만 합니다. 이런게 사회에 찌들어 가는 모습일까요? ^^;
긴 글 읽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