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신이 편하지를 못하니 계속 방황하게 되어 근래에 자주 들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차에 친구들과 함께 이번에 개봉을 한 영화 '변호인'을 봤습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간단히 이야기 하자면, 노무현 전 대통령과 부산 학림 사건을 모티프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개명당한 채로 나옵니다. 실명인물은 머리가 환한 인간쓰레기 정도 밖에 없네요. 시작하기 전 '사실에서 모티프를 얻기는 했지만 픽션이다'라는 문구도 집어 넣어 뒀고요. 아무래도 한국이라는 도가니에서 부담을 느꼈을 것입니다.
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정치를 잘 했냐 못했냐, 이런 것에 초점을 맞추지는 않습니다. 사람이 잘 할 수도 있고, 실수도 하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을 어떻게 가슴에 품고 '사람'을 대하는 '법'을 세상에 보이고,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이야기 하는 용기를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분의 잘잘못을 떠나 그 분을 좋아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젊은 시절이 어땠는지를 어느 정도 알고 있고, 부산 학림 사건에 대해서 왠만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영화의 이야기 전개 자체가 신선하지는 않았습니다. 그건 애초에 이런 류의 영화에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이겠죠. 하지만 이야기를 알고 있는 것과 그 이야기를 영상을 통해서 배우를 통해서 듣고 느끼는 것은 또 별개의 문제입니다. 처음에 돈 밝히는 속물 변호사가 나중에는 법정에서 열변을 토하게 될 때 감동을 받았습니다. 점점 나이가 들어갈 수록 감수성이 예민해지는지, 전에는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을 법한 장면에서도 이제는 눈물이 납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슬펐습니다. 영화 중에도 처음에 송변(주인공입니다)이 이야기 하고 대표하던 보수적 논리인, 그 '종북' 프레임에서 아직까지도 벗어나지 못한 것이 지금의 한국이기 때문이지요. 사실 그것은 한국전쟁의, 그 이전의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요인들 탓이긴 하지만 말입니다(친구들과의 대화 중 반농담 삼아 임진왜란까지 거슬러 올라가기도 했습니다).
영화를 보고 친구 자취방으로 몰려가 술 한잔을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눴습니다. 술이 거하게 들어갔는지, 이제 아저씨라 불릴 시커먼 사내놈들이 질질 짜는 사태도 벌어졌고요(-_-;;). 불편하게 돌아가는 세상과, 거기에 맞설 용기가 없음에 슬퍼하면서요(입으로 떠드는 거야 다들 하는 거지만 행동을 하는 것은 별개란 이야기입니다). 어떤 소설에서 누군가 그랬지요. "영웅은 술집에 가면 많지만, 치과에 가면 하나도 없다" 고요.
간만에 극장에서 본 영화 하나에 주저리 주저리 글이 길어졌습니다. 남은 주말 즐겁게 보내세요.
뱀발이지만, 법정을 다룬 영화인데다가, 공안 문제이다 보니 술자리에서 이석기 의원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이석기 의원이 빨갱이인지 아닌지는 재판에서 확정판결이 나온 다음에 이야기 할 상황이고, 진보당이 빨갱이당이냐는 문제는 이석기 의원 개인과 당과의 관련성이 입증되어야 가능한 이야기인데, 어느 한 쪽도 명백한 결론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정당해산청구를 하는 것은 무리수지 싶습니다.
퇴원하고 가서 봐야겠습니다
휴지좀 들고가야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