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정치적인 글입니다... 감안하고 보세요... (김여진씨의 정치색을 고려 하시구요...)
읽다가 눈물이 핑 돌아 퍼 날라 봅니다... 혹 문제가 되면 삭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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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에게."
"아가, 지금 쯤 아빠와 온 집을 기어다니며 놀고 있겠구나. 엄마가 요 며칠 너와 떨어져 있는 때가 잦아졌지. 왜 그러는 지
너에게 변명을 하려고 해."
"네가 이 세상에 온 이후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같이 있었는데. 정말 젖먹던 힘을
다해, 널 젖먹여 키웠는데 말이야. 엄마 혼자만의 힘으로
널 온전히 키워낼 수는 없겠다는 생각을 했어."
"물론 지금이야 엄마와 네가함께 있는 게 제일 좋지. 조금 더 지나면, 네가 아장아장 걷게 되고 또 말도 하게 되고 친구와 놀 줄 알게 되면 어린이 집도 가고 유치원도 가게 되겠지.
바로 이틀 전 우리동네 성당 부설 유치원에 원생을 뽑는 추첨을 하더구나. 이웃의 네 살
누나는 다행히 붙었지만. 열 명 남짓 뽑는데 80명도 넘는
아이 엄마들이 그 곳에서 추첨을 했었고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곳에 가질 못했어. 더 먼 데, 더 비싼 데를 알아봐야 할 테지. 네 살 밖에 안 됐는데 벌써 어딘가에
떨어지는 경험을 하게 된 아이들을 보며 정말 남의 일 같지 않더구나."
"엄만 널 뱃속에 넣고 저기 부산 영도까지 크래인 위의 진숙이모를 보러 막 왔다갔다 할 만큼 겁이 없는 사람이었는데, 아가 널 낳고 나니 엄만 많은 게 두렵단다.
네 몸과 마음이 그저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랄 뿐인데 지금 우리가 사는 곳은 그게 참 큰 바램인 상황이야. 네가 갈 안전한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결국 못 찾으면 어쩌나,학교에가서
친구들 사이에서 왕따라도 당하면 어쩌나, 아니 네가 누군가를 괴롭히고 따돌리는 걸 먼저 배우면 어쩌나, 성적에 목메 죽고 싶게 괴로운 학창시절은 보내면 어쩌나, 만일 대학을
포기했다고 해서 평생 비정규직으로 살아야하거나 네가 하는 노동이 싸구려 취급받으면 어쩌나.
아가 엄만 매일 매일 이런 상상을 하고 또 스스로 마음을 다잡곤 해. 그래서란다. 그래서 오늘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이 자리에 섰단다."
"엄마가 살아가고 네가 살아가야할 이 세상이 온통 경쟁과 승자독식의 사회로 변해 버린 걸 그냥 볼 수만은 없었단다. 자연은 파괴되고 아이들이 지구상에서 가장 많이 자살을 하고, 청년들이
꿈을 꿀 수 없으며 노인들은 자기 몸 편히 누일 여유조차 갖지 못하는 사회. 너무 미안해서 이대로 너에게
물려 줄 수는 없었단다."
"엄만 네가 행복한 아이가 되길 바래. 네가 무얼 좋아하고 무얼 잘하든 그저 행복했으면
좋겠어. 학교에서 네가 너 자신을 사랑하고 네 친구들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법을 배웠으면 좋겠어. 어떤 이유에서든 차별은 나쁜 것임을 배웠으면 좋겠어. 경쟁하고 이기는
법이 아니라 함께 연구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배웠으면 좋겠어.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배워 군사
독재 시절의 아픔과 민주화 과정의 많은 희생을 알게 되면 좋겠어. 대학에 가지 않더라도 멋진 인생을
살 수 있는 세상이면 좋겠어.
그리고 아가, 난 네가 청년이 되었을 때쯤 친구들과 기차를 타고 대륙을 건너 유럽까지 여행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 더 이상 너와 같은 얼굴, 같은 말을
배우는 북쪽의 아기들이 굶주리다 죽어가는 일도 없고, 어떤 전쟁의 위험도 다 끝이 나 진정한 평화의
시대를 살고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 말하다 보니 엄마의 꿈이 참 크다. 참
또 하나 있다. 멀지 않은 미래에 엄마가 다시 티비에 나오고 네가 그걸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엄마가 원래 연기를 하던 배우라는 걸 네가 알면 좋겠다."
"아가, 널 위해, 그리고 엄마 자신을
위해 지금 이 자리에 서있어. 그리고 많은 사람들과 함께 투표의 권리를 행사할 거야. 과거를 청산하고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그 초석이 될 선택을 할
거야. 그렇게 아주 조금씩 세상을 더 좋게 만드는 일에 참여 할 거야."
"아가, 지금 잠시 떨어져 있어 미안해. 네
웃고 찡그리는 얼굴이 벌써 눈앞에 삼삼하다. 금방 갈게. 사랑해. 아주 많이.
2012년 12월 겨울, 제18대 대통령선거 기호 2번 문재인 대통령후보 광화문 유세현장에서.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