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말, 6월말, 9월 12월말이 되면,
고등학교 동창들의 전화와 카톡이 빗발칩니다.
문과 학교를 나와서 저만 이공계로 진학을 한 덕분에
저를 제외한 제 친구들은 죄다 (우리끼리 농담하는 얘기로) 뜬구름 잡는거 전공하고
지금은 대부분 은행, 보험사 뭐 그런데를 다닙니다.
매 분기말이 되면 실적 압박을 엄청 받는 모양들인데요,
물론 저도 업무의 결과에 대한 압박이야 늘 받지만,
제 업무 결과는 누구 다른 사람이 해결해 줄 수 없는 것인 반면에,
친구들의 실적은 대부분 주위에 민폐를 끼쳐서 해결하는 것들이지요.
대부분 비슷비슷하다보니
한 놈이 카드 만들어 달라고 하고
한 놈이 펀드 들어 달라고 하고
한 놈이 무슨 저축 들어달라고 하고
한 놈이 보험 들어 달라고 하고
한 놈이 연금 들어 달라고 하면,
일단 대부분 들어 줍니다.
부탁하는 쪽에서도 딱히 부탁하는 느낌이 아닙니다.
그래야 자기도 편하게 들어달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올해는 다들 과장 진급하고 첫 해라서 그런지 더 심한 것 같네요.
문제는 저처럼, 부탁할 일 없는 놈 입장에서는 기분이 좀 그렇습니다.
저거 다 들어 주려면 리얼포스 두세대는 날라가는데,
뭐 물론 한두달 있다가 해약하면 대부분 다시 돌려 받기는 하지만,
그래도 펀드나 보험은 손해보는 금액이 꽤 되죠. 뭐 요새 공제하는 대륙 아바타나 올그레이 값은 손해나겠네요.
그래봐야 한 놈당 그놈 땜에 손해보는 돈이 몇만원 되는 것도 아니고
20년 우정을 생각하면 오히려 그깟것 들어달라고 저한테 굽신거리는 것도 말도 안 되는데,
그래도 너무 당연하게 들라고 하고 그러면 기분이 좀 그렇습니다.
사실 뭐 그 정도로 친구한테 짜증부릴만큼 좀스럽지는 않았는데,
저도 딱 6월 말에 만들던 온라인 게임이 외국에서 CBT를 시작해서
이런 저런 사고에 문제가 터지고 수습하느라 정신 없는 와중에
바빠 죽겠는데 다짜고짜 주민번호 부르라고 해서 부르고 나니
신분증을 스캔해서 보내라, 돈을 입금해라 계속 전화하고
너무 당연하게 저한테 호의를 요구하는 모습에 조금 울컥했네요.
뭐, 좀 짜증은 났지만 어쩌겠어요, 20년 우정을. ㅎㅎ
담달에 술이나 사라고 해야죠 ㅋ
화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