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분들은 별 관심 없으시겠지만... 지난 1년 몇개월이 넘게 외환은행 노조와 직원들은 하나금융을 반대하며, 또 다른 한축으로는 이전 주인이던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한 것 자체부터 잘못이라며 국민들을 설득하고 다녔고 이를 위해 열심히 투쟁해 왔었습니다. 단순히 직원들이 새로운 주인이 오니 불안한 마음에서 출발한 것도 있었지만 점차 사실을 알아가다 보니 잘못된 부분들이 있었고 이를 고치고자 나름 열심히 해 왔었습니다. 그런데 허무하게 제 직장(외환은행) 노조가 직장의 새 주주인 하나금융 대표와 합의를 해 버렸습니다. 그리곤 이 모든 걸 '과거'로 치부해버렸습니다.
우리 나라 노동계의 사정상 사측과 Die Hard로 투쟁해 본들 남는 것은 상처밖에 없지만... 아주 온순하게 살아온 저로서도 노조 위원장의 석연치 않은 합의와 과거 치부는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그래서 혼란스럽기도 하고 허탈하기도 하고 적응이 안되기도 합니다.
그래도 현실은 엄연한 현실인지라 한참을 입지 않았던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메고 구두를 신고 출근해서 보니 간간히 '하루 아침에 어찌 이리 변하지?'라는 말을 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들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앉아서 일하고 있습니다. 뭐 대부분은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거겠죠. 거기에 지금 뭔가를 하고 싶어도 괜히 눈에 띄여 불이익을 받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맘일 겁니다. 저도 적응 안되는 맘에, 위원장에 대한 허탈감에 페북에도 자조섞인 글을 올리고 트위터에도 지껄여 봤지만 한정된 페친과 팔로워들에게 말해 본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십몇년 전 코카콜라 회장 신년사에서 얘기 나왔던 것처럼 직업은 고무공이라 다시 튀어 올라 올 것이겠지만... 십년을 넘게 다닌 직장에서 자꾸 맘이 떠나가는거 같습니다. 그렇다고 딱히 다른 곳에 갈 상황도 안되지만... 예전같은 마음을 가지고 일하긴 아예 그른거 같습니다. 어떤 면에선 지난 1년 몇개월 간의 일이 굳이 한국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인생에 있어서 일어나는 일은 엄청난 무게를 가진 수레바퀴이고 이를 대하는 존재는 참을 수 없이 가벼운 것이겠지요.
몇년전 이제는 친하게 된 사람을 만나며 '잘 지냅시다'라고 말하며 속으로 스치던 생각이 요즘 계속 듭니다. '잘 지낸다'는 두 사람간의 의지적인 측면도 있지만 그보다 서로에게 가시 돋힌 말을 하게 되거나 서로에게 배려를 해 주지 못할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내는 상황이 없길 바라는 것이더 크지 않을까... 세상의 수많은 연인과 부부가 한때는 사랑하고 싸우고 헤어지고 나서 후회하는 것이 결국 '잘 지내지' 못해서 아닐까... 제 직장과 저와의 관계가 앞으로 어떻게 되건 돌이킬 수 없게 뭔가 일어난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사람의 아들'주인공이 다시 기독교에 귀의하지만 이전과는 같을 수 없는 일이듯.....
뭐 주절거리다 보니 넘 장광설을 늘어 놓았네요...
예전에 투쟁한다고 여기 게시판에 글 올려서 서명도 부탁 드리고 했었는데 이렇게 모든 것이 허무하게 '과거'로 치부된데 대해 개인적으론 매우 부끄럽고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그 말을 드리려 했는데 이리 길어지고 변명만 늘어 놓았군요...
다시 한번 지금까지 저와 제가 몸담았던 직장과 노조를 응원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리고 좋은 모습 끝까지 지키지 못한데 대해 매우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