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아주 무서운 꿈을 꿨다.
구글이 어느날 올웨이즈 아카이브라는 서비스를 시작한다. 이 서비스에 가입하면 구글이 당신의 하루를 통째로 저장하고 분석해 준다. G칩이라는 버튼을 옷깃에 채우고 있으면 된다. 당신이 만난 사람들, 당신이 친구나 동료들과 하는 말, 당신이 보고 들은 모든 것, 각각의 시간과 날씨, 위치 등 당신의 24시간이 통째로 저장된다. 이 방대한 데이터는 1차적으로 동영상으로 저장되고 여러 단계의 메타 데이터로 분류돼 데이터베이스로 축적된다.
G칩은 반구형으로 돼 있어 옷깃에 채우고만 있어도 당신이 보는 것보다 훨씬 더 넓은 영역을 볼 수 있다. 수집된 영상과 음향, 시간과 위치 정보 등은 모바일 네트워크를 통해 구글의 클라우드 서버에 실시간으로 전송돼 분석된다. 올웨이즈 아카이브 서비스는 증강현실의 가장 발전된 형태다. 구글은 이제 당신이 보고 들은 모든 것들 뿐만 아니라 당신이 제대로 보지 못했거나 듣고도 인식하지 못했던 것들까지 기록하고 의미를 뽑아낼 수 있다.
구글은 당신이 몇시에 일어났는지, 몇시에 출근 지하철을 탔는지, 일주일 전 점심에 뭘 먹었고 얼마를 냈는지, 1년 전 오늘 몇시에 잠자리에 들었는지, 마지막으로 담배를 피운 게 언제였는지, 올해 들어 소주를 몇잔 마셨는지 등을 모두 기억할 수 있다. 지난 1년 동안 평균 기상 시간을 계산할 수도 있고 따로 기록하지 않아도 내 수입과 지출 내역을 언제든 뽑아낼 수 있다. 나도 잘 모르는 나의 소비 성향을 구글은 알게 된다.
이런 위험천만한 서비스를 왜 가입하냐고. 일차적으로는 기록의 욕망 때문이겠지만 구글이 프라이버시를 노출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구글은 메일 서비스에 본문 내용과 관련이 있는 광고를 붙이지만 기계적으로 검색하는 것일 뿐 실제로 내용을 읽지는 않는다고 주장해 왔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를 그대로 믿었다. 구글은 올웨이즈 아카이브 서비스를 시작하면서도 당신의 정보는 당신만 볼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구글의 메일 서비스를 쓰는 건 편리하기 때문이다. 올웨이즈 아카이브도 굉장히 매력적인 서비스인 것만은 분명하다. 핵심은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나의 일상을 몽땅 저장해 두고 필요할 때 언제든지 찾아볼 수 있게 됐다는 거다. 검색 기술이 발전하면서 공개된 문서 데이터라면 뭐든 뚝딱 불러올 수 있게 됐지만 우리들의 기억력은 턱없이 빈약하다. 그래서 이런 서비스가 절실했다고 할 수 있다.
이 엄청난 데이터의 활용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지하철 맞은 편에 앉은 저 사람을 내가 어디서 봤더라? 분명히 언제 어디선가 만났던 사람이지만, 나는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을 구글은 알 수 있다. 구글은 그가 이틀 전 버스 안에서 내 발을 밟았던 사람이라는 걸 알려준다. 그가 올웨이즈 아카이브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면 구글은 훨씬 더 많은 정보를 알고 있겠지만 구글이 내게 알려주는 건 철저하게 내 기억의 영역에 한정된다.
가까운 미래에 뇌파로 컴퓨터를 제어할 수 있는 시대가 온다고 상상해 보자. 간단한 네트워크 장비만으로 두뇌 전체를 실시간으로 컴퓨터와 동기화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이 말은 곧 도서관에 있는 모든 정보를 실시간으로 꺼내 쓸 수 있게 된다는 말과 같다. 그런 시대가 되면 올웨이즈 아카이브 서비스를 거부하는 사람은 알츠하이머병 환자 취급을 받을지도 모른다. 모든 걸 검색만 하면 나오는데 정작 자기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니.
이 꿈이 무서웠던 건 이 무시무시한 서비스를 사람들이 아무도 경계하지 않고 비판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부터였다. 구글은 기계적으로 메타 데이터를 뽑아내기만 할 뿐 프라이버시를 노출시키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를 테면 서울 마포구 지역 30대 남성의 오늘 하루 칼로리 섭취량 같은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하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지만 내가 오늘 뭘 먹었는지는 다른 사람들에게 공개하지 않는다는 게 구글의 주장이다.
더욱 놀라운 건 이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하면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볼 수 있다는 데 있다. 구글은 내가 흘려보낸 일상의 순간순간을 단순히 저장하기만 할 뿐만 아니라 상관관계를 분석하고 분류하고 의미를 뽑아낸다. 나의 일상은 독립된 카테고리 안에 담겨 있지만 구글은 그 카테고리들을 뛰어넘어 사람들의 네트워크와 사고·행동 양식을 분석한다. 구글은 내 옆자리 동료가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나보다 더 잘 알고 있다.
구글은 당신의 연애가 실패할 거라는 걸 알고 있다. 사실은 실패하지 않을 방법도 알고 있다. 구글은 당신이 무슨 음식을 먹었을 때 배탈이 나는지 통계적인 데이터를 확보하고 있다. 구글은 당신 회사에서 누가 당신에게 가장 호의적인지를 분석해 줄 수 있다. 당신이 급하게 돈을 빌려야 할 때 누구에게 빌리면 가장 가능성이 높은지도 말해줄 수 있다. 당신이 모르는 당신과 당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구글은 안다.
충분히 축적된 정보가 있다면 미래를 예측하는 것도 가능하다. 올웨이즈 아카이브 서비스 도입 이후 10년쯤 지나면, 구글은 내년 대통령 선거에 누가 당선될지도 미리 알 수 있게 된다. 모든 변수를 집어넣고 유권자들이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를 시뮬레이션해서 사실상 전수조사에 가까운 완벽한 통계 데이터를 얻을 수 있다. 구글은 알지만 우리는 모르는 그런 정보의 장벽이 생겨난다는 이야기다.
미래를 미리 알면 바꿀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이런 정보를 구글과 아마도 구글의 최상위 경영진만 알고 있다는 데서 비롯한다. 구글을 쓰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세상에서는 구글이 우리의 미래를 쥐고 흔든다고 하더라도 저항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구글을 쓰는 사람과 쓰지 않는 사람은 사고 능력에 큰 차이가 난다. 세상 모든 지식을 백그라운드에 깔고 있는 구글을 두뇌로 활용하는 사람과 머리 속 두뇌 한 덩어리로 맞서는 사람이 동등한 경쟁이 될까.
이 꿈이 끔찍했던 건 이게 꿈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나는 구글의 세계정복 아니 구글의 미래정복 음모에 맞서 레지스탕스 같은 걸 조직하다가 쫓기는 대목에서 잠이 깼다. 이 싸움이 힘겨운 건 이 저항조직이 상대적으로 지적능력이 매우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보다 나를 잘 아는 구글과 구글의 지배를 받는 세상 전부와 맞서는 이 꿈은 정말 끔찍하고 무서웠다.
http://www.leejeonghwan.com/media/archives/002124.html
꿈이 아닐수도 있겠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