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대학교를 다니던 시절이었습니다.
도서관에 고시공부를 하는 사람이 제법 많았습니다.
그 중에 제 친구가 아는 형이 한분 계셨지요.
저는 친구의 지인인 형과 인사를 나눌 기회를 갖진 못했었습니다.
나중에 친구에게 물어봤습니다.
버섯볶음밥 : "누구야?"
친구 : "응~ 고향 선배형~"
버섯볶음밥 : "형 좀 무섭게 생겼다"
친구 : "응 좀 그렇지 ㅋㅋㅋㅋㅋㅋㅋ"
형의 키는 180까지는 안되지만, 씨름선수를 연상케하는 다부진 체격을 하고 있었습니다.
오랜 고시생활 탓인지, 몸무게가 거의 90kg에 육박해보였거든요.
감히 가까이 다가가기 힘든 분이라 여겨졌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전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하나 뽑아들고 밖에 나가 휴식을 취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도서관 복도에서 멀리 그 형과 어떤 이쁜 여자분이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게 보였습니다.
'야~ 저 형은 고시공부하면서도 능력도 좋아' 속으로 중얼거리며 그 커플이 있는 곳을 지나치게 되었지요.
그런데, 제가 그 곁을 지나치려는 순간,
그 형과 여자분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것이였습니다.
약간 떨어져서 보니,
도서관 자리문제로 다툼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였습니다.
"여기 원래 내자리잖아요! 내 책이 여기 있는데, 아가씨가 왜 치워요? 내 자리...$%@#^!@"
그 형은 흥분을 감추지 못한듯 했습니다.
그러자, 그 여자분은,
차분하게 그리고 조목조목 그러나 약간은 언성을 높이는듯한 소리로,
"전 책을 치운적이 없고, 그리고 책이 그 위치에 있었다고 해도, 그 자리를 맡아놓는 사람이 있을거라고 생각할수는 없었잖아요?!"
그렇게 그 여자분은 명쾌하게 논리를 전개해나갔습니다.
몇마디의 대화가 더 오가고,
그 형은 그 여자분에게,
"제가 잘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렇게 소동(?)은 끝이 났습니다.
그 형이 풍기는 포스에도 불구하고,
전혀 흔들림없이 대처하는 그녀의 모습에 저는 그 여자분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늘 그 여자분이 어렴풋이 생각나는건,
소동이 끝난 후에라도 그 여자분에게 말이라도 걸어볼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 상황이었다면,
"왜 이 자리에 앉아요?"라는 그 형의 한마디에
저는 무서워서라도 순순히 자리를 비켜야만 했을것 같았거든요.
그 여자분은 '남자의 외모를 보지 않는 여자'란 것을 이제서야 깨달았습니다.
여자친구랑 헤어진지 6개월,
번번이 소개팅에서 실패하는 요즈음,
그때 그 도서관에서의 그녀의 얼굴이 어렴풋이나마 떠오르는 밤입니다.
잘생긴 제가 아직까지 여친이 없는걸 보면 알지요 ㅠ (잘생겼다는거 농담입니다.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