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온상수
네티즌들에게 안상수라는 정치인들을 결정적으로 각인시킨 것은 ‘보온병 발언’. 지난해 11월30일 연평도 포격사격 이후 연평도를 방문해 불에 탄 보온병을 들고 “이게 포탄입니다. 포탄”이라고 말하는 영상이 보도전문채널 <와이티엔(YTN)>의 ‘돌발영상’을 통해 공개됐다. ‘보온병‘ 발언은 즉각 “군미필자의 눈에는 포탄으로 보일 수도 있다”는 누리꾼들의 조롱을 사면서 ’보온병 상수’라는 별명을 생산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보온병 발언 경위에 대해 <와이티엔>쪽의 연출에 의한 것이라 주장을 펴 여론에 기름을 끼얹었다. 안내자가 불탄 보온병을 포탄으로 착각하고 안 대표에게 포탄이라고 설명하고, 이를 들은 방송사 카메라 기자들이 안 대표에게 “포탄이라고 말하면서 포즈를 취해달라”고 요청해서 찍은 영상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방송사쪽은 연출 요청은 없었다고 반박했다.
■ 자연산이 좋아
안 대표의 부적절한 발언 목록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지난해 12월22일 서울 용산의 한 장애인 시설을 방문해 여기자 3명과 오찬을 하는 자리에서 “요즘 룸살롱에 가면 오히려 ‘자연산’을 더 찾는다고 하더라”며 성형 안한 여자를 자연산에 비유했다. 이후 한나라당은 사과논평을 냈으나 민주당은 “책임을 지고 대표직을 사퇴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여성단체들도 사퇴 촉구 성명을 잇따라 발표했다.
■ 행불 상수
그의 병역 미필 경위를 둘러싼 석연찮은 해명은 병역문제에 민감한 젊은 네티즌로부터 ‘행불 상수’라는 비아냥과 야유를 낳았다. 그는 1968년 현역 입영판정 이후 1973~1974년 행방불명이란 이유로 입영기일이 연기되는 과정을 거쳐 1975년 공소권 무효 조처로 입영뒤 귀가조처할 때까지 행적이 묘연했다. 그가 보온병 발언 이전까지 ‘행불상수’라는 별명으로 더 알려진 것도 이런 병역기피 의혹 때문이었다. 그는 지난해 7월13일 한국방송 1텔레비전에서 열린 한나라당 대표최고위원 경선 토론에서 병무당국의 ‘행불 처리’에대해 “절에서 사법시험을 공부하고 있을 때, 집에 날아온 입영통지서를 글을 모르는 노모가 영장인지 알지 못하고 전달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연평도 포격사건이 나자 군 미필을 의식해서인지 “군대에 입대하겠다”고 해 비웃음을 샀다. 지난해 11월29일 여의도 한 호텔에서 열린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병역 미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전쟁이 나면 지금이라도 입대하겠다”고 발언했다.
유시민 전 장관은 이에 대해 자신의 트위터에 “전쟁하면 입대하는 것은 모든 평범한 국민의 의무입니다. 집권당 대표가 해야 할 일은 전쟁을 예방하고 평화를 만들어 국민이 안심하고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참 걱정스럽니다”라고 꼬집었다.
■ 좌파주지 발언 논란
그는 봉은사 전 주지인 명진 스님을 좌파로 몰아붙였다는 논란도 불러일으켰다. 지난해 3월21일 당시 봉은사 주지였던 명진 스님은 조계종 총무원이 봉은사를 총무원 직영 사찰로 만든 것에 대해 이렇게 주장했다. “안 대표가 자승 총무원장 스님과 2009년 11월13일 한 호텔에서 만나 ‘현 정권이 저렇게 비판적인 절의 주지를 그냥 놔둬서 쓰겠느냐’고 발언했으며, 그해 11월30일 총무원장 당선 직후에 자승 스님과 만난 자리에서도 안 대표가 좌파 주지 운운했다는 이야기를 자승 스님으로부터 들었다”
이에 대해 안 대표는 3월22일 “누가 명진 스님인지 알지도 못하고 그 사람이 좌파인지 우파인지 모른다. 봉은사 주지 스님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무슨 압력을 넣느냐”고 사실무근임을 주장했다. 그러나 안 대표와 자승 총무원장 등과의 모임을 주선한 김영국 조계종 불교문화사업단 대외협력위원은 3월22일 기자회견을 열고 “명진 스님의 말은 사실”이라고 확인했다.
그는 또한 지난해 11월2일 “30년 이상 좌파의 세뇌교육은 우리 국민과 청소년들에게 좌파의 정치적 선동에 쉽게 빠져들게 했다”며 좌파척결을 주장하기도 했다.
■ 누리꾼을 적으로
그가 많은 누리꾼들로부터 조롱과 패러디의 대상이 된 것은 인터넷 여론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려는 측면도 빼놓을 수 없다. 지난해 11월5일 “인터넷을 보면 한나당을 욕하고 이명박 정부를 욕하는 게 깔려 있지 않은가”라며 “디지털 세계에서도 정면승부를 걸어 반드시 1년 내에 이기도록 하겠다”고 밝혀 인터넷 여론을 조작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그는 한발 더 나아가 중앙청년위원회 임명장 수여식에서도 “인터넷에 들어와서 저쪽 세력과 치열하게 싸워야 한다”며 인터넷 여론전을 지시하기도 했다.
■ 박종철 사건 때 활약?
안 대표는 1974년 사업시험에 합격해 검사로 임용된 뒤 20년간 검사로 근무했다. 물러난 뒤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다 1996년 김영삼 당시 대통령에 의해 발탁돼 신한국당 공천으로 15대 국회의원에 당선돼 4선을 연임했다. 그는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조사한 담당검사로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데 앞장섰다며 관련 저서까지 출판하며 잔뜩 공치사를 했다. 그러나 검사 출신 한나라당 한 의원은 “실제로는 별로 한 것이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