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성장 시대의 이 살기 좋은 아파트 단지에서는 겨울도
살찐 부자가 되어 여유가 만만하다. 매일같이 사우나탕에
가서 땀을 빼고 오는 주름살하나 없는 팽팽한 얼굴에는
언제나 부드러운 미소가 감돌고 있다. 이제 그는 추위를
모른다. 추위란 여자들의 밍크코트를 돋보이게 만드는
조명장치의 불빛일 뿐이다. 개구리도 올챙이를 모르거늘
하물며 이 아파트 단지의 주민들이 옛날 겨울, 배고픈
그 말라깽이를 알까 보냐. 초가집 처마 끝에 진종일 꽁꽁
언 고드름으로 꺼꾸로 매달려 있기 일쑤였던 그 녀석,
때로는 동사사고를 일으켰지만 절대로 썩지는 않는 온
몸이 시퍼런 뼈였던 그 녀석은 죽어 버린 것이다.
증앙 집중식 난방에 전기난로까지 곁들인 이 따뜻함
속에서야 제놈이 죽지 않고 배길 수 있겠는가. 추위를
모르는 살찐 겨울, 짠맛을 잃은 소금이 설탕으로 둔갑해서
집집마다 단맛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그래서 이 아파트
단지는 나무로 치면 뿌리에 해당하는 지하의 쓰레기장이
이 겨울에도 푹푹 썩고 있는것이다
이형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