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문 강에 삽을 씻고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일이 끝나 저물어
스스로 깊어가는 강을 보며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
나는 돌아갈 뿐이다
삽자루에 맡긴 한 생애가
이렇게 저물고 저물어서
샛강바닥 썩은 물에
달이 뜨는구나
우리가 저와 같아서
흐르는 물에 삽을 씻고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로
다시 어두워 돌아가야 한다
정희성
아버지는 강변에 둑을 쌓아 논을 만드셧다.
나무 뿌리와 커다란 돌들을 굴려 둑을 쌓았다.
구멍이 숭숭 뚫린 흙탕물 묻은 '런닝구', 봄볕에 검게 그을린 팔뚝이 큰 돌들을 들어올리거나,
나무 뿌리를 괭잇날로 내려칠 때는 붉은 힘살이 꿈틀거렸다.
막강해 보이시던 아버님이 저문 강에 앉아 날카롭게 닳아진 삽날을 씻을때 나는 번뜩이는 삽날 빛을 보며 산이 우는 소리를 들었다.
삽을 메고 어둑거리는 마을로 들어오시는 아버지가 그립다.
(김용택 - 시가 내게로 왔다 2권 中)
고등학교때 연애편지를 쓸때 손수 시를 적어 편지 뒷글에 보태곤 했었는데 ㅎㅎ
날씨가 풀리고 밤 하늘에 별을 보다보면 제맘에도 많은 시가 쌓이겠네요.
행복한 밤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