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보드 헤는 밤.
키보드 입문 3년, 책상 옆 선반은
키보드 박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키보드의 역사와 계보를 다 헬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키보드를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통장잔고가 바닥나는 까닭이요
세상에 만져 보지 못한 키보드가 아직도 너무 많은 까닭이요
닭참해야 할 공제가 계속되는 까닭입니다.
키보드 하나에 키캡과
키보드 하나에 스위치와
키보드 하나에 보강판과
키보드 하나에 기판과
키보드 하나에 무한 동시입력과
키보드 하나에 응삼님, 그리고 아꽈님,
응삼님, 나는 키보드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 한때 주력으로 썼던 키보드들의 이름과 돌치, 와이즈, 키릴, 이런 이국 키보드들의 이름과, 벌써 골동품이 된 빈티지 레어템 키보드들의 이름과, 극강의 퀄리티를 자랑하는 커스텀 키보드들의 이름과, 삼클, 닭클, 림케비, 제니스, 확장, 오징어, 나물밥, 옴니키 울트라, 리딩엣지 DC-2014 이런 키보드들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두꺼운 승화 키캡이 아스라이 멀 듯이.
찌니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내방동 탐앤탐스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키보드가 거래된 장터에서
승화를 검색해 보고
창을 닫아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이베이질을 하더라도
통장 잔고를 걱정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공제는 계속되고
돌치나 와이즈도 레플리카가 나오듯이
내 초라한 키보드에도 언젠가
자랑처럼 보들보들 승화 키캡이 장착될 거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