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내 딸 가빈이에게 2탄
가빈아!!
너네! 놀이방은 왜 이러니?
느닷없이 엄마한테 전화가 왔었단다, 11월10일 너네! 놀이방에서
아빠랑 산행을 한다고.
도대체 왜! 아빠를 가만 놔두지 않는 거냐!
가빈아!
세상 사람 모두에게 토요일이 휴무는 아니란다.
아빠가 토요일에 휴가를 생각한다는 것은,
아빠 책상도 사라질 수 있다는 생각도 함께해야 한단다.
다행히 11월10일은 니 생일이고, 엄마 아빠 결혼기념일이기에.
부장님에게 사실대로 얘기를 했단다.
와이프가 쓰러졌다고, 그러니깐 니 엄마가 쓰러진 거다.
차마 널 쓰러드릴 수 는 없더구나.
부장님은 걱정하면서, 빨리 가보라고 하시더라.
그래서 아빠는 가벼운 마음으로 너랑 산행을 할 수 있었단다.
이건 비겁한 게 아니라 지혜라고 한단다.
조금만 비겁해지면 세상살이 얼마나 편해지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가빈아!
이런 날은 엄마들이 김밥 같은 걸 싸잖니!
출발 전에 소풍 가방을 열어 보았단다.
김밥 대신 빵과 우유가 가방 한쪽에 다소곳이 놓여 있더라.
이 경우가 아빠가 살아오면서 가장 황당했던 경우는 아니란다.
그렇지만 최소한 두, 세 번째는 되는 것 같더라.
엄마가 지금까지 김밥 싸는 걸 본적이 없었기에 나름대로 예상은 하고 있었단다.
그런데도 충격이 크더라.
아빠는 어쩔 수 없이 김밥헤븐에서 천 원짜리 김밥 다섯줄을 샀단다.
다른 가족들은 옹기종기 모여 앉아 김밥을 먹고 있을 때,
우리 식구들만 구석에서 원래 빵과 우유를 좋아하는 가족인 것처럼,
행복한 표정을 지으면서 빵과 우유를 먹고 있을 순 없잖니!
며칠 전에 엄마가 말하더라.
천 원짜리 김밥의 쌀은 중국산 찐쌀을 사용한다고.
찐쌀이 뭔지는 굳이 알 건 없단다.
하지만 중국산 생선에선 가끔 납, 나사 이런 게 가끔 나온단다.
우리나라에서 생선은 수산물이지만 중국에선 공산품일수도 있다는
얘기란다.
니가 궁금해 할 것 같아서 하는 말인데,
너와 엄마가 먹던 김밥과 아빠가 먹던 김밥이 달랐던 이유는.
세현이네 엄마가 김밥을 많이 싸왔다고,
우리에게 조금 나눠줬던 김밥이란다.
세현이네 엄마가 줬던 김밥은 너와 엄마가 먹었고,
중국산 찐쌀로 만든 김밥은 아빠가 먹었단다.
엄마는 커피까지 챙겨주면서 많이 먹으라고 하더라.
니 엄마는 무지 행복한 표정을 짓더라.
김밥을 빌어먹는 게 행복한 건지,
남편에게 찐쌀로 만든 김밥을 먹여서 행복한 건지는 잘 모르겠더라.
엄만 천 원짜리 김밥은 쳐다도 안보더라.
아빠가 김밥 네 줄 먹었잖니!
원래 인생은 불공평한 거라지만,
이번 경우는 만큼은 많이 먹었다고 행복한 경우는 아닌 것 같더라.
가빈아!
사람은 힘들어도 참아야 할 때가 있는 법이란다.
높은 산도 아니고, 그렇게 높게 올라갔던 것도 아닌데,
산에서 내려올 때 건들건들 걷더라.
아빠가 봐도 다리 풀린 것 같더라.
엄마가 바로 한마디 하더라.
"가빈이 이 자식 운동부족이야!"
아빠는 순간 당황했단다.
아빠가 당황했다는 건,
엄마 머리에 가빈이의 특별 훈련프로그램이 작성되고 있다는 얘기란다.
그동안 엄마가 힘들어서 포기했던 수락산 등반이
다시 시작됐다는 얘기이고.
너에게 편안한 주말이 없어졌다는 이야기랑도 같은 말이란다.